09. 희귀질환은 왜 진단이 늦어질까? 진단까지 오래 걸리는 이유
몸이 계속 아픈데 검사에서는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병원을 옮길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면 환자와 가족은 많이 답답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증상은 있는데 왜 병명을 찾지 못할까?”
“검사를 이렇게 많이 했는데 왜 아직도 모르는 걸까?”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 가운데는 진단을 받기까지 여러 병원과 진료과를 다니고, 검사를 반복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처럼 증상이 시작된 뒤 정확한 병명을 찾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을 **진단 방랑 또는 진단 오디세이(Diagnostic Odysse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미국 NIH 산하 **유전·희귀질환 정보센터(GARD)**도 희귀질환 환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찾고 진단을 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NIH GARD 유전·희귀질환 정보센터
그렇다면 의학기술과 유전자검사가 발전한 지금도 희귀질환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희귀질환 진단은 실제로 얼마나 오래 걸릴까요?
모든 희귀질환 환자가 진단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질환과 증상, 검사 방법에 따라 비교적 빨리 진단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서는 상당수 환자가 진단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4년 유럽 41개국에서 희귀질환 1,675종과 관련된 환자와 가족 6,507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증상이 처음 나타난 뒤 확진까지 걸린 시간이 평균 4.7년이었습니다.
또 응답자의 약 절반은 진단까지 1년 이상 걸렸습니다.
다만 이 결과는 유럽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므로 모든 나라와 모든 희귀질환 환자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숫자는 아닙니다.
PubMed|희귀질환 진단 지연 연구 보기
미국 NIH의 **미진단질환 프로그램(Undiagnosed Diseases Program)**에서도 진단이 어려운 환자들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NIH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에서 다룬 사례는 진단까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0년 이상 걸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NIH|Undiagnosed Diseases Program
왜 희귀질환은 처음부터 알아보기 어려울까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말 그대로 질환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감기, 당뇨병, 고혈압처럼 의료진이 자주 접하는 질환은 증상과 검사 결과에 익숙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희귀질환은 한 의사가 평생 진료하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정도로 드문 경우도 있습니다.
NIH는 특정 희귀질환 환자가 매우 적기 때문에 해당 질환을 실제로 여러 번 진료해 본 의사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NIH|진단되지 않은 질환에 대한 설명
따라서 첫 진료에서 바로 희귀질환을 의심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초기 증상이 흔한 질환과 비슷할 수 있어요
희귀질환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피곤함,
근육 약화,
두통,
복통,
성장 지연,
걷기가 불안정함,
잦은 감염,
피부 변화
처럼 비교적 흔한 증상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은 매우 다양한 질환에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특정 희귀질환을 의심하기 어렵습니다.
또 같은 희귀질환이라도 환자마다 증상의 종류와 심한 정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릴 때 증상이 나타나지만, 다른 사람은 성인이 된 뒤에야 뚜렷한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의 다양성도 진단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증상이 여러 장기에 나뉘어 나타날 수 있어요
희귀질환 가운데는 한 장기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기에 동시에 영향을 주는 질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환자에게
신경 증상,
피부 문제,
눈 이상,
근육 약화,
심장 문제
등이 함께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는 눈 증상 때문에 안과를 찾고, 근육 문제 때문에 신경과를 찾고, 심장 증상 때문에 심장내과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증상을 따로 보면 서로 다른 질환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결국 여러 진료과에서 확인된 정보를 한데 모아야 비로소 **“이 증상들이 하나의 질환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NIH의 미진단질환 프로그램도 이런 복잡한 환자를 평가할 때 신경과, 면역학, 피부과, 심장학, 유전학 등 여러 분야 의료진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단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NIH 미진단질환 프로그램의 진단 과정
처음에 다른 병으로 진단되는 경우도 있어요
희귀질환 증상이 흔한 병과 비슷하면 처음에는 다른 질환으로 진단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오진(Misdiagnosis)**이라고 합니다.
앞서 소개한 2024년 연구에서도 한 번 이상 다른 질환으로 진단받은 경험은 진단이 늦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또 여러 의료진을 거칠수록 진단 지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European Journal of Human Genetics 연구|PubMed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초기에 다른 질환을 의심했다고 해서 반드시 의료진의 실수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초기 증상이 여러 흔한 질환과 비슷하다면 먼저 가능성이 높은 질환부터 검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진료 과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치료를 받아도 증상이 계속되거나 예상과 다른 증상이 추가될 때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처음 진단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검사 하나로 모든 희귀질환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유전자검사를 하면 희귀질환을 한 번에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희귀질환 가운데 많은 질환이 유전적 원인과 관련되어 있지만 모든 희귀질환이 유전질환은 아닙니다.
또 유전질환이라고 해도 검사 방법에 따라 찾을 수 있는 유전자 변화가 다릅니다.
혈액검사, 영상검사, 조직검사, 효소검사, 염색체검사, 특정 유전자검사, 엑솜검사 또는 유전체검사 등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환자에게 어떤 검사가 필요한지는 증상과 가족력, 이전 검사 결과에 따라 달라집니다.
NIH는 유전체 분석 기술이 희귀질환 원인을 찾는 데 큰 발전을 가져왔지만, 검사만으로 모든 미진단 환자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NIH|희귀 유전질환과 유전체 검사
유전자검사를 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습니다.
현재 검사 기술로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발견된 유전자 변화가 실제 질병의 원인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또 아직 의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유전자나 새로운 질환일 수도 있습니다.
NIH의 미진단질환 프로그램에서는 일반 검사뿐 아니라 가족 단위 유전체검사, RNA 검사, 메틸화 검사 등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모든 환자가 진단되는 것은 아닙니다.
NIH|Undiagnosed Diseases Program 현황
따라서 **“유전자검사가 정상이라서 유전질환이 아니다”**라고 단순하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 검사 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 시간이 지난 뒤 새로운 의학 지식으로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는지 의료진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단이 늦어지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진단이 늦어지는 가장 큰 문제는 병명 하나를 늦게 알게 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환자에게 맞는 관리와 치료가 늦어질 수 있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검사를 반복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치료를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환자와 가족은
“왜 아픈지 모르겠다.”
“앞으로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
“아이에게도 유전될까?”
같은 불안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희귀질환의 진단 지연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진단 과정이 여러 전문의 방문, 반복 검사, 잘못된 진단 및 치료와 연결될 수 있으며 환자와 가족에게 심리적·사회적·경제적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PMC|희귀질환 진단 지연 연구
어떤 경우에는 다시 진단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까요?
다음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담당 의료진에게 추가 평가나 전문의 진료가 필요한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진단을 받았지만 증상이 잘 맞지 않는 경우,
치료를 받아도 예상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여러 장기의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
가족 중 비슷한 증상을 가진 사람이 여러 명 있는 경우,
어린아이에게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운 발달 지연이나 퇴행이 나타나는 경우,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한 경우입니다.
이런 증상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희귀질환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한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희귀질환이나 유전질환 가능성도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담당 의료진에게 질문해볼 수 있습니다.
진단을 앞당기기 위해 환자와 가족이 준비할 것은 무엇일까요?
병원에 갈 때 지금까지의 기록을 정리해 두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 처음 증상이 시작됐는지,
어떤 증상이 먼저 나타났는지,
어떤 병원을 다녔는지,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
과거 검사 결과는 무엇이었는지,
어떤 약을 사용했고 반응은 어땠는지,
가족 중 비슷한 증상이 있는지
등을 정리해두는 것입니다.
특히 여러 병원을 다녔다면 검사 결과와 영상 자료, 진료기록을 한곳에 모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GARD는 희귀질환이나 복잡한 질환의 진단이 어려운 경우 대학병원이나 큰 학술의료기관처럼 여러 분야 의료진이 함께 평가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안내합니다.
NIH GARD|희귀질환 정보와 도움 찾기
정확한 진단은 왜 중요할까요?
희귀질환 가운데는 아직 원인을 치료하는 약이 없는 질환도 많습니다.
그래도 정확한 진단은 중요합니다.
병명을 알게 되면 앞으로 어떤 증상을 주의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필요한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특정 치료법이나 증상 관리 방법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전질환이라면 가족에게 나타날 가능성과 가족검사, 유전상담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또 새로운 치료제나 임상시험이 개발됐을 때 참여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도 정확한 진단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희귀질환 진단의 목표는 단순히 병 이름 하나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필요한 관리와 다음 선택을 찾는 데 있습니다.
FAQ
희귀질환은 진단까지 평균 몇 년이 걸리나요?
한 숫자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질환, 국가, 의료환경에 따라 차이가 큽니다.
2024년 유럽 41개국의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증상 시작부터 확진까지 평균 4.7년이 걸렸지만, 이는 모든 희귀질환 환자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수치는 아닙니다.
희귀질환이 의심되면 바로 유전자검사를 해야 하나요?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증상과 가족력에 따라 혈액검사, 영상검사, 대사검사나 다른 검사가 먼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유전질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임상유전 전문의나 유전상담 전문가와 상의해 적절한 유전자검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검사가 정상이라면 희귀질환이 아닌가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검사로 확인할 수 없는 유전자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유전자나 질환일 수도 있습니다.
검사 종류와 검사 범위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여러 병원을 다녀도 진단이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까지 받은 검사와 진료기록을 정리한 뒤 담당 의료진에게 대학병원이나 희귀질환·유전질환 전문기관에서 추가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는지 문의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NIH의 GARD를 통해 희귀질환 정보와 전문가, 관련 기관을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NIH GARD 방문하기
마무리
희귀질환의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병이 드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초기 증상이 흔한 질환과 비슷하고, 환자마다 증상이 다르며, 여러 장기의 문제가 따로 나타날 수 있고, 적절한 전문의와 검사에 도달하는 과정도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유전자검사와 유전체 분석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모든 희귀질환을 한 번에 찾아주는 검사는 없습니다.
원인을 찾지 못한 증상이 오래 지속된다면 그동안의 진료기록을 정리하고 담당 의료진과 함께 진단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명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한 진단은 필요한 치료와 관리, 가족검사, 새로운 치료 연구로 연결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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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희귀질환 진단에 관한 일반적인 의료정보이며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같은 증상이라도 원인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특정 증상이 있다고 해서 희귀질환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이 지속되거나 악화되는 경우 담당 의료진과 상담하고 필요한 경우 전문의의 평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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